パク・シニャンさんのインスタグラム写真 - (パク・シニャンInstagram)「♡박신양장학회는 임지영작가님의 진심을 응원합니다♡  예술 장학생이 된다는 것  / 임지영 15기 장학생  "선배님, 감사합니다!"   몇십년만에 불러보는 호칭이었다. 아직 소년, 소녀같은 앳된 선배님부터 애기 아빠가 된 선배님까지, 그들은 해맑게 웃으며 선물을 건넸다. 노랗게 손을 내민 프리지아 꽃다발과 커피잔, 화장품, 이름이 새겨진 볼펜까지 각자의 마음이 가득한 축하 선물들. 살면서 이런 열렬한 환대를 받아본 적 있던가. 거기 있는 모두가 프리지아처럼 환해졌다.   박신양 배우가 만든 박신양 장학회에 장학생이 됐다. 우연치않게 그의 작업실 방문으로 인연이 되어 서로의 일들을 응원하고 있는터였다. 15년전부터 장학회를 해오고 있는 그는 누군가는 까다롭다고 할 지 모르지만, 자기만의 신념으로 연기, 그림, 삶까지 꼿꼿하게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었다. 물론 쉽지 않아보였다. 우리를 에워싼 위장을 벗어던지며 스스로를 바로 보는 것은 희열 이전에 고통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야 제대로 사는 것임을, 예술가는 특히 그리 해야함을 알려주는 장학회를 무려 15년동안 해오다니. 그가 엄청 기가 센 사람이어서, 광풍대우에 꿈쩍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그 세월을 견딘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상처를 껴안고 열정을 쏟아부으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게 맞겠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장학생들을 선발하고 그들을 평생 응원하는 체계를 갖추느라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이제 곁에서 조금 지켜본 사람으로 이렇게 말하는 걸 빙그레 웃으며 끄덕거리겠지.   몇달 전에 그가 신나는 목소리로 전화했다.   "박신양 장학회에 예술 장학금을 만들기로 했어요! 거기 지원해주세요! 함께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하하하"   웃음 소리가 크고 밝았다. 내가 예술계 프로삽질러인 걸 아는 그였다. 선물로 건넨 내 책을 의례적으로 넘기지 않고 꼼꼼히 읽고서 지금껏 내가 해온 일들을 크고 귀하게 여겨 진심의 엄치척을 해준터라 그 제안이 너무 고마웠다. 장학금을 줘도 모자랄 판에 장학생 지원이라니 조금 부끄러웠지만, 뭔가 내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았고 할 말도 있을 것 같았다. 늘 이야기하지만 나는 좋은 일을 남을 위해 하지 않는다. 먼저 내가 기쁘기 때문에 한다. 내 마음이 순전한 기쁨으로 차오를 때의 그 쾌감이 너무 좋아서, 그걸 계속 나에게 공급해주는 것이다. 보육원 50군데 넘게 그림 1000점 이상을 기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내가 좋으니까, 기쁘니까 즐겁게 계속 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할 이유인데, 아니, 장학금까지 준다고? 그리고 불현듯 사심 하나가 일렁였다. 장학회에 들어가면 박신양 작가의 그림을 보육원에 기증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싱긋 웃으며 눈을 번쩍 빛냈다.   그런데 장학생이 되는 길은 길고도 험했다. 1차 서류, 2차 영상, 3차 오디션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을 다 통과해야 했다. 추천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 봐주는 게 하나도 없었다. 너무 정확한 박신양 작가님 같으니라고. 게다가 나는 인생 최고로 바쁜 시기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3차 오디션날, 극한 오디션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박신양 작가를 비롯 1기부터 14기까지의 장학생들이 모여 집단 면접 형태로 진행되는데,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다. 면접이라기 보다 어디서도 겪어본 적 없는 서로에 대한 인간 탐구이자 채굴이자 자극이랄까. 이 오디션의 정말 특이한 점은 서로가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아무때나 아무거나 물어봐도 된다는 것이고, 모두가 돌아가면서 서로에게 질문했다. 박신양 작가에게도 예외는 없다. 이 장학회는 왜, 무엇 때문에 시작했고 누가, 몇 명이나 기부를 하고, 운영하는데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 자유롭게 아무 질문이나 해도 된다. 예술이 뭐예요? 라거나 선한 영향력은 뭘까요! 관념적인 질문은 없었다. 그저 모든 질문은 사람을 향해 있었다.   "당신은 누구죠? 우리는 그게 알고 싶어요." (댓글에서 계속~♡)」2月28日 19時31分 - park_shinyang

パク・シニャンのインスタグラム(park_shinyang) - 2月28日 19時31分


♡박신양장학회는 임지영작가님의 진심을 응원합니다♡

예술 장학생이 된다는 것  / 임지영 15기 장학생

"선배님, 감사합니다!"

몇십년만에 불러보는 호칭이었다. 아직 소년, 소녀같은 앳된 선배님부터 애기 아빠가 된 선배님까지, 그들은 해맑게 웃으며 선물을 건넸다. 노랗게 손을 내민 프리지아 꽃다발과 커피잔, 화장품, 이름이 새겨진 볼펜까지 각자의 마음이 가득한 축하 선물들. 살면서 이런 열렬한 환대를 받아본 적 있던가. 거기 있는 모두가 프리지아처럼 환해졌다.

박신양 배우가 만든 박신양 장학회에 장학생이 됐다. 우연치않게 그의 작업실 방문으로 인연이 되어 서로의 일들을 응원하고 있는터였다. 15년전부터 장학회를 해오고 있는 그는 누군가는 까다롭다고 할 지 모르지만, 자기만의 신념으로 연기, 그림, 삶까지 꼿꼿하게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었다. 물론 쉽지 않아보였다. 우리를 에워싼 위장을 벗어던지며 스스로를 바로 보는 것은 희열 이전에 고통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야 제대로 사는 것임을, 예술가는 특히 그리 해야함을 알려주는 장학회를 무려 15년동안 해오다니. 그가 엄청 기가 센 사람이어서, 광풍대우에 꿈쩍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그 세월을 견딘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상처를 껴안고 열정을 쏟아부으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게 맞겠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장학생들을 선발하고 그들을 평생 응원하는 체계를 갖추느라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이제 곁에서 조금 지켜본 사람으로 이렇게 말하는 걸 빙그레 웃으며 끄덕거리겠지.

몇달 전에 그가 신나는 목소리로 전화했다.

"박신양 장학회에 예술 장학금을 만들기로 했어요! 거기 지원해주세요! 함께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하하하"

웃음 소리가 크고 밝았다. 내가 예술계 프로삽질러인 걸 아는 그였다. 선물로 건넨 내 책을 의례적으로 넘기지 않고 꼼꼼히 읽고서 지금껏 내가 해온 일들을 크고 귀하게 여겨 진심의 엄치척을 해준터라 그 제안이 너무 고마웠다. 장학금을 줘도 모자랄 판에 장학생 지원이라니 조금 부끄러웠지만, 뭔가 내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았고 할 말도 있을 것 같았다. 늘 이야기하지만 나는 좋은 일을 남을 위해 하지 않는다. 먼저 내가 기쁘기 때문에 한다. 내 마음이 순전한 기쁨으로 차오를 때의 그 쾌감이 너무 좋아서, 그걸 계속 나에게 공급해주는 것이다. 보육원 50군데 넘게 그림 1000점 이상을 기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내가 좋으니까, 기쁘니까 즐겁게 계속 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할 이유인데, 아니, 장학금까지 준다고? 그리고 불현듯 사심 하나가 일렁였다. 장학회에 들어가면 박신양 작가의 그림을 보육원에 기증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싱긋 웃으며 눈을 번쩍 빛냈다.

그런데 장학생이 되는 길은 길고도 험했다. 1차 서류, 2차 영상, 3차 오디션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을 다 통과해야 했다. 추천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 봐주는 게 하나도 없었다. 너무 정확한 박신양 작가님 같으니라고. 게다가 나는 인생 최고로 바쁜 시기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3차 오디션날, 극한 오디션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박신양 작가를 비롯 1기부터 14기까지의 장학생들이 모여 집단 면접 형태로 진행되는데,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다. 면접이라기 보다 어디서도 겪어본 적 없는 서로에 대한 인간 탐구이자 채굴이자 자극이랄까. 이 오디션의 정말 특이한 점은 서로가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아무때나 아무거나 물어봐도 된다는 것이고, 모두가 돌아가면서 서로에게 질문했다. 박신양 작가에게도 예외는 없다. 이 장학회는 왜, 무엇 때문에 시작했고 누가, 몇 명이나 기부를 하고, 운영하는데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 자유롭게 아무 질문이나 해도 된다. 예술이 뭐예요? 라거나 선한 영향력은 뭘까요! 관념적인 질문은 없었다. 그저 모든 질문은 사람을 향해 있었다.

"당신은 누구죠? 우리는 그게 알고 싶어요."
(댓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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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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